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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좋은 가정은 가족간 말이 통하는 집

함박웃슴가득 2009. 8. 6. 16:45

분위기 좋은 가정은 가족간 말이 통하는 집

매일경제 | 입력 2009.08.06 16:39

 
◆김미경의 아트스피치 (6)◆

분위기 좋은 집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족 사이에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아이들도 부모 마음을 잘 안다. 이런 집은 가훈도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아버지가 지난 외환위기 때 미리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둔 덕에 더 좋은 회사로 옮겼던 것 기억하지? 그래서 우리집 가훈이 '유비무환'이 된 거야."

아이들은 말을 통해 할아버지, 부모 세대의 경험과 교훈을 자신의 정신적 유산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많은 가정에서 가훈은 액자에 걸린 장식품일 뿐이다. 가족 간의 기본적인 대화조차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말의 '권력화'에 있다. 말을 소통이 아닌 명령과 권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숙제했어, 안 했어?" "셋 셀 때까지 말해!"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아이들을 다루는 아버지 앞에서 아이들은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부모가 원하는 답만 말하게 된다. 결국 아이들의 유일한 소통 통로는 휴대폰과 인터넷밖에 없다. 각자 방에서 휴대폰 문자로 부모 '뒷담화'를 하거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댓글을 단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직장인이 돼도 상사를 설득하지 못한다. 집에서 아버지 세대를 설득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자랄 리 없다. 그러나 자식을 벙어리로 만든 부모들은 "다 큰 녀석이 자기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 하느냐"며 외려 화를 낸다.

말의 권력화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소통이 아예 단절되기도 한다. 게다가 많은 아버지들이 새벽에 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간다. 한마디로 '유령'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50대가 돼서 은퇴하면 유령이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한다. 다 큰 대학생 아들에게 "왜 이렇게 늦게까지 자느냐,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참견하기 시작한다.

뜬금없이 "요새 별일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가족 간에 "별일 없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그동안 소통이 어지간히 안 됐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50대 대기업 간부는 모처럼 대학생 자녀들을 불러 모아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평소 자녀들과 통 대화가 없었던 그는 다짜고짜 "요새 애로사항을 말해보라"고 했단다. 그러자 아들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버지가 애로사항이에요."

문제는 아이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아버지가 회사에서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대화가 없는 집은 아버지가 알려준 바 없으니 제로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아버지가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자연스레 DNA로 전수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족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라도 가족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으면 말의 권력 구조를 과감히 깨버려야 한다. 여기에는 n분의 1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가족 4명이 1시간 대화하는 동안 부모가 50분 말하고 자녀가 10분 얘기한다면 말이 권력화돼 있다는 증거다. 각자 똑같이 15분씩 얘기해야 한다. 이미 자녀들과 대화가 끊겼다면 대화가 끊긴 그 시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11세부터 대화가 끊겼다면 초급 단계로 내려가야 한다. 초급 단계에서 멈춘 대화는 결코 한 번에 고급 대화로 업그레이드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CEO는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이후로 대화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이미 장성한 아들과 얘기를 하려 해도 어색하다며 피하기만 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 무슨 얘기를 했나 돌이켜 봤더니 같이 수영장에 가고 운동을 하면서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결국 그는 아들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나눌 법한 '기초적인' 대화를 1년 동안 한 뒤에야 드디어 아들이 여자친구 얘기를 하더란다. 가족 문화를 바꾸고 싶다면 이미 죽은 가훈은 벽에서 떼라. 말의 권력 구조부터 깨고 아이들과 눈높이 대화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