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갈등 대한민국

함박웃슴가득 2009. 8. 5. 18:14

갈등 대한민국

서 태 원 大記者
 나라가 온통 어수선하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갈등이 극한 상황에 달한 모습이다.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벌인 여야 간의 극한 대치는 수개월째 의회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켰다. 또 남북한 간의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데다 경제현장에서는 쌍용자동차의 대치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사실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과 조직으로 이뤄진 한 사회의 갈등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고, 민주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갈등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한 사회를 정체 내지는 퇴보시키게 된다.

이런 갈등의 고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 구조를 바꾼다든지 갈등 의제를 관리하거나 적절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는 이를 추진할 마땅한 기구나 시스템이 없어 보인다.

각종 사회적 갈등을 공론화하거나 수렴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최후의 보루인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십수년 간 보수와 진보로 정권이 왔다 갔다 하면서 국회는 갈등 해결보다는 확대 재생산에 주력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흔히 다양한 사회 갈등을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사실 갈등의 대부분은 이익집단 간의 갈등, 이해관계 대립에 의한 갈등이고 순수하게 이념적 지향이 다른 집단 간의 갈등은 의외로 적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틀에서만 갈등을 보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방송법 개정이 핵심인 미디어법 갈등만 해도 이념으로 포장돼 있지만 사실은 기존 방송사의 기득권 보호와 이를 깨겠다는 것이 초점이었다. 한쪽에서는 현 정부가 정권에 유리한 방송환경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5공이 만들어 놓은 현행 방송 체제를 허물어야 보다 다양한 방송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보는 이의 시각이나 포지션에 따라 상대방 논리는 잘잘못도 따져보지 않은 채 무시하거나 비판했다. 어느 순간 이념까지도 그럴듯하게 덧칠해져 걷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확산됐다.

갈등이 왜 표출되는지 원인을 따져보면 기본적으로는 자기만 옳고, 상대방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컵에 물이 반쯤 있는데 한쪽에서는 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이나 남아 있다고 한다. 동일한 현상에 대한 해석부터 이렇게 다르면 갈등 해결은 요원하다.

이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존경받는 어른이나 그 사회의 중립적인 리더와 여론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어른과 리더, 여론이 우리에겐 없다. DJ정부 때 고 김수환 추기경이 정국에 대해 훈수를 뒀다가 반대쪽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우리에겐 말 한마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어른이 없을 뿐더러 그런 어른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또 여론을 형성할 오피니언 리더와 언론도 사실상 없다. 갈등의 해법을 제시할 주체들이 이미 어느 한쪽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낙인’ 찍힌 리더나 언론은 같은 부류의 집단에겐 자기만족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의 영향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어쩌다 양비론을 펴면 회색으로 몰아버리는 등 우리 사회는 중립지대 지식인과 언론을 그냥 놔두지 않아왔다.

결국 갈등 해결을 종용할 주체는 국민의 마음 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모두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장기적으로 여론, 즉 언론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자세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비록 더디겠지만 우리 사회의 저력을 믿는다.

작성일 : 2009-07-23 오후 7: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