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내 중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외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임원급 마케팅책임자 채용에 나섰다. 여러 후보자 중에서 후보자 C씨는 원어민 못지않은 뛰어난 영어실력과 유창한 프레젠테이션 스킬 등으로 면접관들을 사로잡았다. C씨는 만장일치로 채용됐다. 평판 조회도 거치지 않았다. 그러나 C씨는 채용된 후 외국출장 때 사용하지도 않은 경비 영수증을 가짜로 만들어 회사에 거짓 청구하는 등 비윤리적 행동을 반복했다. 몇몇 직원들은 이러한 내용을 개인 SNS에 올려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결국 C씨는 채용 6개월 만에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C씨 인터뷰를 진행했던 면접관들은 다시는 `인터뷰 달인`에게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 올해 초 한 외국계 IT 회사는 한국지사 부사장을 채용할 때 외부 인사 영입을 고려했다.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해온 영업부장 A씨가 유력한 승진 대상자였으나 최근 몇 년간 판매 실적을 고려할 때 A씨 업무 능력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실적으로 업계에 소문나 있던 3명이 영입 대상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결국 A씨가 부사장으로 최종 결정됐다. 외부 인재 3명을 상대로 2시간 이상 인성 테스트와 4~5차례에 걸친 대면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비슷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에 일관성이 없었다. 결국 능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윤리성을 믿을 수 있는 내부 인재를 승진시키기로 결정했다.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윤리성이 부족해 임용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 내 비윤리적인 구성원에 의한 문제가 자주 발생하면서 임직원 도덕성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임직원 윤리성은 기업 존폐를 좌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임원 횡령 사건으로 회사 주가가 하락하고, 담당 직원이 고객 정보를 의도적으로 빼돌려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기업 내 핵심기술을 의도적으로 유출한 사례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이비우 유니코써어치 이사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윤리성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다. 한 기업 임원은 `경영자`로서 조직문화를 이끄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사평가 때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한 비중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하급 관리자까지는 승진 심사 때 능력을 중시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능력보다 윤리의식 중요성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 평판 조회 중요성 커져
최근 각종 SNS가 보편화한 것도 윤리성이 중요해진 이유다. 윤리에 어긋난 구성원 언행이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퍼져 기업이 하루아침에 치명상을 입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상신 유니코써어치 대표는 "과거에는 회사에 이익이 된다면 비윤리적인 행동이라도 옹호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에는 아무리 회사에 이익이 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보편적 윤리성에 어긋나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기업이 궁지에 몰릴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윤리성을 판단하기 위해 인재 채용 때 평판 조회를 활용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한 외국계 제약회사는 2시간이 소요되는 인성에 관한 전화테스트를 한국지사와 외국 유명 컨설팅회사가 각각 별도로 진행한다. 몇몇 국내 중견기업도 임원급을 채용할 때 7~8회에 걸쳐 까다로운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10회가 넘는 면접을 진행하는 기업도 있다.
서치펌 관계자는 "회사가 지금까지 성공에 그치지 않고 지속 성장 가능한 기업, 고객에게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윤리성을 큰 요소로 다룰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외국계 기업, CFO는 반드시 외국인에게 맡기기도
외국계 기업은 친분과 정(情)을 기반으로 한 한국 내 문화적 특성을 경계한다. 한국지사 재무책임자(CFO)에 반드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임명하거나 싱가포르 홍콩 호주 등에 위치한 AP(아시아ㆍ태평양)시장 총괄지사가 직접 한국지사 재무관리를 맡도록 한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전자기기 업체인 B사도 최근 신임 한국지사장으로 한국인 대신 본사에서 근무하던 미국인을 임명했다.
그동안에는 국내 사정에 밝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한국 인재를 지사장으로 채용해왔다. 그런데 한국인 지사장은 판매량 강제 할당, 접대성 문화 등 협력업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사례가 많았다.
B사는 이런 문제가 외부에 노출되면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판단해 앞으로 한국인을 아예 지사장 후보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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